부동산을 성공의 기준으로 삼던 시대가 지나고, 주거는 ‘삶의 질·관계·정서적 만족’을 중심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본 글은 부동산 자산보다 삶의 질: 세대별 주거 가치의 전환점 이라는 주제로, 베이비붐 세대부터 Z세대까지 세대별 주거 가치관의 변화를 분석하고, 부동산 중심 사고가 약화되는 이유와 ‘삶의 질 기반 주거’가 향후 주거 패러다임의 중심축이 되는 과정을 깊이 있게 살펴본다.

부동산 중심 가치관의 시대: 소유·안정·성공을 둘러싼 세대적 배경
오랜 세월 동안 주거는 단순한 생활 공간을 넘어 ‘경제적 안전’을 상징했다. 특히 한국을 포함한 산업화 국가에서 집은 부와 성공, 안정성,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가장 확실한 자산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가치관은 특정 세대의 선택이 아니라, 당시의 경제적·사회적 환경이 만들어낸 구조적 결과였다.
먼저,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에게 주택은 곧 경제 발전의 상징이었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던 시기, 주택 소유는 사회적 도약의 가장 빠르고도 확실한 방법이었다. 당시 경제 구조에서는 임금 상승 속도가 부동산 가격 상승과 맞물렸고, 주택은 안정적인 자산 축적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에게 집은 생존 기반이자 성공의 증거였으며, 경제적 미래를 좌우하는 핵심 전략 자산이었다.
이어지는 X세대(1965~1979년생)는 ‘내 집 마련’ 신화를 이어받으며 경쟁적으로 주택을 취득했다. 특히 1990~2000년대의 부동산 폭등기와 아파트 브랜드화 현상은 이들에게 주거를 단순한 필요가 아닌 ‘상징자본’으로 만들었다. 평수·입지·단지 브랜드·학군은 곧 가족의 사회적 지위와 계급을 결정하는 요소가 되었고, 주택 시장은 자연스럽게 계층 이동의 통로로 기능했다.
또한, 산업화 시대의 주거는 가족 중심 모델을 기반으로 설계되었다. ‘결혼—출산—내 집 마련’이라는 라이프사이클이 표준으로 여겨졌고, 가족을 위한 넓은 집을 마련하는 것이 사회적 성취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졌다. 이는 사회 전체가 부동산 중심의 가치관을 강화하는 기반이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구조 속에서 주거는 일종의 축적 게임이 되었고, ‘좋은 집’, ‘넓은 집’, ‘가치 상승이 보장된 집’이 곧 성공의 기준이 되었다. 심리적 의미 역시 강력했다. 집은 개인에게 안정감, 명예, 성취감, 가족의 미래를 보장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이러한 구조는 균열을 맞기 시작했다. 소득과 자산 간 격차는 더욱 심화되었고, 부동산 가격은 임금 상승 속도를 넘어설 만큼 폭등했다. 이전 세대가 믿었던 ‘열심히 일하면 집을 살 수 있다’는 공식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게 되자, 주거는 다른 의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주거는 단순한 자산이 아닌 삶의 질, 정서, 경험, 관계라는 새로운 가치를 중심으로 재해석되기 시작한다. 바로 이 지점이 세대별 주거 가치관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MZ세대를 중심으로 변화하는 주거 가치: 자산보다 일상, 소유보다 경험
부동산 중심 시대가 흔들리면서 새로운 주거 가치관의 중심에는 MZ세대(1980~2010년대생)가 있다. 이들은 이전 세대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주거의 의미를 해석하며, ‘집의 크기’보다 ‘일상의 질’을 우선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취향 차이가 아니다. 사회 경제적 환경, 기술, 문화, 관계 구조의 변화가 결합하면서 나타난 구조적 현상이다.
우선, 경제적 구조 변화는 MZ세대의 주거 가치관을 가장 크게 흔든 요인이다. 고용 불안정, 소득 정체, 부동산 가격 폭등은 내 집 마련을 실현 가능한 목표가 아닌 ‘운과 계급이 좌우하는 게임’으로 만들어버렸다. 이러한 환경에서 소유를 목표로 삼는 것 자체가 비합리적이 되었고, MZ세대는 자연스럽게 ‘소유 기반 삶’ 대신 ‘경험 기반 삶’을 합리적 선택으로 간주하게 됐다.
또한, MZ세대는 디지털 환경에서 성장하며 소유의 의미를 유연하게 해석하는 세대이다. 음악·영화·자동차·패션·기술 등 대부분의 소비에서 구독·공유·대여가 일반화되면서, 주거에서도 소유 개념을 절대적 가치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들에게 주거는 ‘내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에 따라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는 구조이어야 한다.
세 번째 요인은 일·관계·삶의 경계가 흐려진 생활 방식이다. 재택근무·프리랜스·프로젝트 기반 노동이 늘어나면서 집은 더 이상 단순한 잠자리 공간이 아니다. 일하고, 쉬고, 관계를 맺고, 취미를 즐기고, 자신을 표현하는 종합적 생활 공간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좋은 집’은 넓거나 비싼 집이 아니라 ‘내 삶을 충족시키는 기능을 가진 집’으로 재정의되었다.
네 번째 변화는 관계 구조의 재편이다. 현대 사회는 고립과 단절이 심화되고 있으며, MZ세대는 이를 누구보다 예민하게 체감한다. 그들은 안정적인 관계와 심리적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주거에서도 공동체성·심리적 안정·배려 문화 등을 중시한다. 단순히 벽만 있는 공간으로서의 집이 아니라, 관계와 경험이 쌓이는 생활 플랫폼이 중요해진 것이다.
다섯 번째 변화는 삶의 질을 중시하는 문화의 확산이다. 우울·번아웃·사회적 피로가 증가하면서 MZ세대는 자산 중심 경쟁에서 벗어나 ‘정서적 웰빙’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 결과, 미니멀리즘·취향 기반 주거·코리빙·챌린지형 주거 서비스 등 삶의 질을 높이는 방식들이 주거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이 모든 변화는 주거를 ‘투자 상품’에서 ‘삶의 도구’로 재정의하는 과정이다. MZ세대에게 주택은 올라가는 자산이 아니라, 나를 회복시키고, 나의 경험을 확장시키고, 나의 정체성을 표현해주는 플랫폼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집의 평수나 가격이 아니라,
✅ 동선의 효율성
✅ 커뮤니티의 질
✅ 시설의 접근성
✅ 라이프스타일 적합성
✅ 정서적 안정감
이다.
이처럼 MZ세대는 주거의 의미를 ‘삶의 질 중심 구조’로 이동시키며, 기존의 주거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삶의 질 중심 주거 시대의 도래: 지속가능한 새로운 주거 패러다임을 위해 필요한 조건
세대별 가치관의 변화는 단순한 흐름이 아니라, 앞으로의 주거 구조가 어떻게 설계되어야 하는지를 결정짓는 지표다. 주거가 자산 중심에서 삶의 질 중심으로 이동하는 시대가 도래했으며, 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여러 구조적 조건이 필요하다.
첫 번째 조건은 ‘심리적 안전’을 중심으로 한 주거 설계다. 삶의 질은 심리적 안정에서 출발한다. 방음, 사생활 보호, 동선 분리, 조용한 회복 공간 등 개인의 마음이 회복될 수 있는 설계가 필수적이다. 과거의 주거가 넓이와 입지를 중심으로 설계됐다면, 앞으로의 주거는 심리적 안정과 정서적 편안함이라는 기준으로 설계돼야 한다.
두 번째 조건은 유연한 주거 구조다.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은 빠르게 변화하며, 한 사람이 다양한 형태의 삶을 경험한다. 따라서 임대 기간, 주거 형태, 가구 구조, 공용 공간 사용 방식 등은 변화에 맞춰 쉽게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듈형 주택·코리빙·단기 주거 서비스 등은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 모델이다.
세 번째 조건은 관계적 웰빙을 고려한 공동체 설계다. 삶의 질 중심 주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관계다. 하지만 공동체가 개인을 침범하지 않도록 ‘자율적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선택 가능한 관계 구조, 편안한 커뮤니티 공간, 배려 기반 규칙 등은 건강한 관계를 만드는 핵심 요소다.
네 번째 조건은 도시 인프라와의 연결성이다. 삶의 질은 집 내부뿐 아니라 도시와의 연결에서도 결정된다. 직장, 학교, 병원, 문화시설, 공원, 이동성 인프라 등은 주거 만족도의 핵심 요소이며, 미래 주거는 도시의 다양한 기능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다섯 번째 조건은 지속가능성과 환경적 가치다. Z세대와 MZ세대는 환경 의식이 높으며, 지속가능한 소비를 실천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주거에서도 나타난다. 에너지 효율, 친환경 소재, 스마트 관리 시스템 등은 필수 요소로 자리 잡고 있으며, 미래 주거의 경쟁력을 결정할 중요한 기준이 된다.
마지막 조건은 주거 불평등 해소다. 삶의 질 기반 주거 철학이 지속 가능하려면, 더 많은 사람이 질 좋은 주거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정책적 기반이 뒷받침돼야 한다. 공공 코리빙, 적정 임대 정책, 도시 균형 개발 등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
결국 ‘부동산 자산 중심 주거’의 시대가 저물고, ‘삶의 질 중심 주거’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앞으로의 주거는 소유가 아니라 경험·안정·관계·자기회복·지속가능성을 기준으로 설계될 것이다.
이 변화는 세대가 달라져서가 아니라,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이 흐름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